2020년 7월에 기록한 송국의 소소한 이야기 - 대학 가는 날

2021. 3. 10. 15:16송국이 하는 일/월간 송국레터

'대학 가는 날'

오늘은 가톨릭 대학교 강의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심호흡으로 긴장을 푼다. 얼어 있는 얼굴근육이 계란후라이를 굽는 것처럼 서서히 제 보양새를 갖춘다. 이왕 하는 거 정말 멋지게 잘해 보고 싶다. 그렇게 속삭이다 보니 어느새 마음의 자물쇠가 풀어진다. 햇살도 따듯하게 내 눈을 부시시하게 손을 잡는다. 작은 열기이지만 힘을 얻는다.

지하철에서 일행을 만나고 떠리는 마음으로 출발을 한다. 나에겐 공황장애가 있다. 그런데 웬걸 가는 중 반쯤에 긴장이 격해지더니 병의 증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아닌가?

엉망이다. 실패다. 그렇게 기대를 많이 하고 신경을 많이 썼는데. 머리채를 꾸역꾸역 움켜지고 흔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올라온다. 그러나 눈을 감고 다시 심호흡을 한다. 전에 성당에 강의를 가서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기언이 난다. 반복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괴롭다. 시간이 갈수록 고개는 아래로 숙여 진다. 눈을 뜨면 고통이 나에게 덤벼들 것 같다. 어느새 가톨릭대학교로 도착하고 하지만  정문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강당에 들어서고 힘없이 늘어진 채 앉아있는데 시작하기 5분전에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공황증세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정말 내 운명을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환희가 가득 차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제는 원래 하던 데로 자신감만 북돋으면 된다. 학생들 앞에 있으니깐 어둠속에 속삭이는 야생늑대들의 눈빛처럼 날 향해 있는 반짝이는 눈빛들이 느껴진다. 다들 꿈이 많은 복지과 학생들이다. 나의 의무는 그들의 꿈을 더욱더 윤택하고 희망차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를 겪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다짐한다. 난 그들에게 소리친다. 우리 정신장애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짧은 강연이 끝나고 박수갈채도 받으면서 나또한 즐거운 기운을 받는다. 만나기전보다 학생들과 나사이가 한 뼘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강렬한 임팩트가 학생들 가슴사이에 남겨졌으면 좋겠다. 가끔은 이런 행운이 있어야지 세상은 정말 살만한 것 같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방송사 이름은 생각 안 나지만 인터뷰도 했다. 솔직담백하게 얘기한 것 같아 만족을 한다.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인복에 자신 없던 내가 이렇게 강의를 함으로서 많이 성숙하고 성장한 게 아닌가 싶다. 오늘은 정말 선물 같은 날이다. 나도 기회가 닿으면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하고 싶다. 세상사는 사람 중에는 안 귀한 사람이 없다. 난 그걸 병으로 인해 깊이 깨닫고 있다.

모자르고 부족하지만 공생관계가 원만히 이루어지는 세상이 어서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마음의 눈이 정말 소중한 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