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송국일기 - 여름은 짧지만, `당신`이라는 여름은 영원할 것이다

2021. 12. 14. 12:54송국이 하는 일/월간 송국레터

하늘이 유독 아름다운 여름이다. 여름날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말고도 많다. 담장에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능소화, 여름 내내 피고 지는 배롱나무, 진흙을 뚫고 물기 하나 없이 우아하게 피어나는 연꽃, 들판에 퍼지는 칡꽃의 향내 그리고 푸른 바다와 하얀 포말 등 둘러보면 참 많다.

지난봄 가디언스클럽 회원분들과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보면 마음이 참 훈훈하다. 자녀들에 대한 깊은 애정뿐만 아니라 고용과 자립생활센터 등 독립생활 지원제도 실현 그리고 정신장애 인식개선과 인권옹호를 위해 앞장서는 가족분들을 보며 제가 서 있는 자리와 입장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회원분들과 함께 한 시간은 인생공부를 하는 시간이었고 귀한 분들을 알고 사귀는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지난봄에 개봉한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2021)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는 `제시카 브루더`가 2017년에 출간한 책에 기초하고 있다. 제시카 브루더는 `은퇴와 종말`이라는 자신의 기사에 기초하여 3년간 밀착 취재와 조사에 의해 차를 집으로 삼아 유랑하는 노동자 `노매드`의 삶을 책으로 생생하게 담아냈다. 원작이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주목할만한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주연배우를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노년이 되면 유목하는 노매드로 살고 싶다고 늘상 이야기 했었고, 이 책에 깊은 감명을 받아 영화 제작자와 주연배우로 참여하였다. 감독을 맡은 중국 출신 `클리오 자오`는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 형식의 영화로 만드는데 탁월한 감독이다. 영화에서 전문 영화배우는 `펀`역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길 위에서 `펀`과 잠시 사귀는 `데이브`역의 데이빗 스트라탄 두 사람일 뿐이다. 놀랍게도 나머지 등장인물은 실제로 유랑하는 노매드이다. 영화는 펀과 노매드의 거칠고 주름진 얼굴 앞에 카메라를 바싹 들이대고 그가 누구이고 어떤으로 살고 싶은지를 담아낸다. 카메라는 일자리와 여행지를 향해 길을 떠나는 차량과 구부러진 도로, 그 뒤로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 풍광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다른 노매드는 자기 이야기를 말하고 펀은 말없이 듣는다. 관객은 펀을 따라 노매드의 인생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2008년 금융위기로 많은 기업이 망하고 줄지어 직장을 잃은 가족과 개인은 벼락거지가 되고, 심지어 도산한 기업과 사람이 사람이 떠난 지역은 우편번호조차 없어진다. 노매드로 내몰린 사람들은 경제적 위기로 인해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는 자부심 가득한 지위를 상실하였으며, 가족,친구,이웃과의 친밀한 관계를 상실하였으며,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과 희망, 자아상과 멀어진 사람들이다.

영화 후반부는 노매드가 상부상조하는 캠핑 공동체와 리더 `밥 웰스`이야기 그리고 노매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주인공 펀을 중심으로 펀의 이야기를 말한다. 펀의 언니가족 이야기, 펀과 데이브의 이야기, 암 환자 스완키가 자신이 소망했던 대로 존엄성을 유지하고 노매드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 등 펀과 노매드의 주체적인 삶 이야기에 주목한다. 영화는 캠핑카나 밴에 살림살이릘 싣고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향해 길을 떠나는 노매드로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으로 일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행자로 살아가는 노매드 삶의 방식읠 선택한 사람들의 정체성 이야기로 이동한다.

노매드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몰리듯 사랑했던 집과 사람을 떠난 상실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상실 이면에 있는 노매드가 강하고 희망하고 원하는 것에주목하자.노매드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기억되는 한 잊혀지지 않고 그의 이야기는 살아있다. 펀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나는 가정이 없는 게 아니라 집이 없는 거야``(Im not homless, I`m houseless). 그리고 자신의 결혼식에서 읊었던 시 세익스피어 소네트 18번의 한 구절을 청년 노매드에게 들려준다. ``여름이라는 것은 굉장히 짧게 지나가지만,`당신`이라는 여름은 영원할 것이다.`` 뜨거운 열기와 찬란한 풍광을 자랑하는 여름날은 지나간다. 하지만 나답게 살고자 하는 희망과 삶의 목적을 확신한다면, 결코 친절하지 않은 현실에 맞서 나답게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사계절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