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도 힘든 과거사

2024. 5. 21. 14:39송국클럽하우스/송국 사람들의 에세이

때는 내 나이 스무 살 가족 중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어머니께서 무슨 영문인지 이단에 빠지셨다. 

그 이후 나의 방황은 어머니의 "죽어라." 이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서우리만큼 충격적이었다.

매일 밤 집 밖을 배회하였다. 도무지 뭘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해가 뜨면 그제야 집에 들어왔다. 다들 집 밖을 나가고 아무도 없는 시간이었다.

혼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서야 나는 잠들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 방황의 시간이 계속되자 어머니의 걱정으로 교회 아는 형이 내 곁에 붙여졌다.

그렇게 한동안 둘이 함께 밤거리를 헤매었다.

마음이 허한 탓이었을까 그 와중에 교회 누나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나의 오빠와 불편한 일이 생겨 교회 생활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문제가 점점 커졌고, 육교 밑에서 받은 어머니의 거취를 묻는 전화를 마지막으로 나는 율곡 병원이라는 정신병원에 실려 가게 되었다.

강제 입원이었다.

그렇게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곳의 환경은 열악했다.

왜인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였고, 사과 반쪽과 딸기잼 조금 그리고 식빵 2개가 식사의 전부였다. 신기하게도 환자들과는 줄곧 잘 지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환자들이 보는 시선이 달랐고, 담당 원장님이 판단하는 이미지가 너무나 달랐다.

처음으로 내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서울에서 일하고 있던 작은누나가 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병원을 찾아왔고,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작은누나에게 너무나도 감사했고,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어 너무나도 미안했다.

강제 입원의 후유증으로 약은 잘 챙겨 먹지 않았고, 증상이 심해져서 다시 병원 생활을 했다.

그 후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약을 챙겨 먹게 되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TV 시청 중 호텔리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호텔직원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독서실을 끊고 수능 공부에 집중했다.

노력의 결과가 좋아서 호텔경영학과가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부분 7년이나 어린 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행사로 참여했지만, 다행히 쉽게 친해졌고, 선배들과도 잘 지내며 성적도 꽤 좋게 나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친한 친구의 죽음을 시작으로 학교생활이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다.

생활이 엉망이 되니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엉망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 상황이 안 좋아지자 정신력도 약해졌고,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치료를 잘 받으며 잘 적응하고 있던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며 영화도 보고, 운동도 하고, 노래방도 다니며 차츰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중 작은누나와 매형이 학비를 대줄 테니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셔서 호텔경영과를 입학하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현재의 나는 안정적으로 생활을 하는 듯하다. 현재 생활에 감사하며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질 내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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