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 없는 무기력에서 살아남기

2024. 5. 21. 14:46송국클럽하우스/송국 사람들의 에세이

1. 

  방 안, 새로울 것 없는 단조로운 일상과 하루. 온돌방에 누워 새우잠을 자다 깼다. 하얀 커튼이 해를 가려 어둡다. 눈만 겨우 떠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태어날 때 배운 숨쉬기만 겨우 하는 중이다. 인간에게 잠이 주어져서 자야하는 기분이랄까. 어릴땐 수채화를 잘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미술학원에 6개월 정도 다녔지만 내겐 그런 재능이 없었다. 달리기를 잘 해서 운동회에서 1등을 하고 싶었다. 혼자 운동장을 열심히 달렸지만 2등에 그쳤다. 나이가 들자 경찰 공무원이 되고 싶은 꿈도 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헤어릴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나를 끌고다녔다. 어쩌면 나의 삶도 숨만 겨우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밖을 나가면 가족이 있는데, 지금 이대로 고독사를 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잘도 즐거운 일이 생긴다던데, 내겐 세상 모든 흥밋거리가 다 무의미했다. 열정과 의지가 현실에서 다른 방향으로 일어날 때마다 경험한 낙심이 내겐 너무 고통스러웠다. 고통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차라리 누워서 자버리기라도 했다면 좋았다. 끝없는 생각의 꼬리들이 잠을 쫓았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결국 이렇게 밖에 살아내지 못한 내 모습이 나를 괴롭혔다. 몸을 일으켜 반짝이는 서랍장식에 손가락을 대면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을까 하는 가당찮은 생각을 했다. 

 

2. 

  몸을 일으켰다. 주방에 나가 냉장고를 열었다. 가족들이 해놓은 반찬이 식탁에 놓여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주걱으로 그릇에 밥을 덜었다. 가족들 틈에 앉았다. 밥이라도 먹어야 탈나서 병원갈 일이 없다. 제 밥값은 못해도 가족들에게 불필요한 병원비를 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밥 한 술을 떠서 마른 입 속에 밀어넣었다. 쌀도 씹으면 달다더니, 이에 부딪히는 쌀밥이 으깨지자 무기력도 함께 부서지는듯했다. 뭐라도 먹다보면 현실감이 살아난다. 하지 않은 일들과 하지 못한 일들이 밀려든다. 괜한 죄의식이 든다. 하지만 밥심 탓인지, 해가 중천이라 그런지 다시 드러누울 수는 없었다. 곧장 일어서서 식탁에 놓인 그릇들을 싱크대에 담았다.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마쳤다. 곁에 놓인 주방 타올로 주변정리를 마쳤다. 식탁을 닦아내자 이제야 뭔가 할 수 있을것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이윽고 화장실로가 세수를 했다. 미온수가 얼굴을 적시자 밤새 쌓인 피로가 내려갔다. 그리고 양치를 했다. 치약을 조금 짜내 입 속에 넣었다. 우물대며 방금먹은 음식을 쓸어내리자 입가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린 마음이 조금은 일어섰다.

 

3. 

  다행히 내게 만족스러운 일을 하나 꼽자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택근무라 동료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고, 업무지시나 협조도 시스템의 쪽지로 주고 받기에 딱히 전화를 하지 않는다면 목소리로 서로의 소식을 전할 일도 없다. 동료와 마주할 일이 없어도 가능하면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오래된 노트북을 켜자 부품들이 제기능을 하려고 키보드 아래에서 작은 소리를 내었다. 정해진 사이트를 열고 출근부에 버튼을 눌렀다. 주어진 일을 하다보면 내가 잘 하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래도 밥 벌이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방안 가득 마우스 소리와 가끔 키보드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담당자에게 쪽지가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 버튼을 클릭했다. 주어진 일에 생각거리가 많으면 오래 걸리다가도 어떤 날은 고민 없이 빨리 끝내기도 한다.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일을 다 끝냈을 때는 괜히 회사에 내 몫을 다 하고 있는건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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